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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서(2022)_17 ©2023. Shin-joong Kim

한가지 ​진지하게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왜 오케스트라 앙상블 서울의 연주를 찾아주십니까?"

한국에도, 전 세계에도 좋은 챔버오케스트라는 손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제한된 챔버 레퍼토리 만으로 대중 앞에 꾸준히 서는 것은 사실상 모험이기 때문입니다. 일반 대중에게 클래식 음악회를 찾는 이유를 묻는다면 큰 비중으로 사람들은 대편성 교향곡을 듣기 위함이라 이야기할 것입니다. 대규모의 오케스트라와 그것이 뿜어내는 심장이 떨리는 듯한 음향에 우리는 금세 마음을 빼앗기곤 합니다. 

그런데, 대형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어떤 의미에서 일방적 소통일 수 있습니다. 연주자 각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이전에 음량과 화려함에 압도되기 쉽습니다. 반면에 작은 규모의 앙상블을 들을 때 청중의 귀는 명료한 소리를 쌓아 나가는 연주자 개개인을 좇아가게 됩니다. 그런 이유에서 챔버오케스트라는 청중에게 비교적 가까운(intimate) 규모의 앙상블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물론 저 역시 말러의 심포니를 좋아하고 라흐마니노프, 브람스의 심포니를 연주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비싼 옷과 구두를 다 벗어놓고, 편안한 모습으로 집 앞을 산책하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하지요. 가끔 찾아오는 OES와의 연주가 그렇습니다.

저는 OES의 창단부터 '우리의 각오는 건강한 음악을 만들어 대중에게 내놓는 것입니다' 라고 목표를 설정했고 이를 지키려 저와 동료들은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극적이고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린 음식보다는, 소박하고 담백하지만 정성이 담긴 음식을 내놓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드는 사람이 행복한 음식'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저와 악단이 걸어온 길은 인기와 영리를 경계해왔습니다. 그렇다고 결코 추레하거나 성의없는 모습은 아닙니다. 우리의 본 모습을 가장 정직하고 엄정하게 담아내기 위해 한국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최정상의 아티스트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OES는 사람으로 치자면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아이 여럿을 길러본 노련한 부모의 손에서 자라면 좋으련만, 출항부터 지금까지 함께 성장하는 젊은 지휘자와 항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저 연주 하나하나 해내기에도 버거우련만, 높은 이상까지 실현하고자 하는 OES의 성장통을 생각하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 참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위로를 삼습니다. 그리고 그 감격적인 과정을 함께 하고 있는 저는 참 행복합니다.

언제까지나 저와 OES가 젊은 음악가의 표상일 수는 없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다보면 어느샌가 기성세대가 되어 있을 것이고, 한국 음악계의 지표가 되는 날이 오겠지요. 그 때에, 지금의 우리와 같은 젊은세대의 음악가들이 마음놓고 존경할 수 있는, 납득할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어른들이 되어있고 싶습니다. 모든 세대와 공감하고,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악단이 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음악가의 양심이 살아있는 한, 더디 가더라도 쉽게 가지 않겠습니다. 언제든지 음악이 필요한 순간, 여운있는 감동으로 여러분 곁에 있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오케스트라 앙상블 서울 예술감독

이 규 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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